[리뷰] 편집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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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편집자의 세계(고정기 저)"
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근대의 출판 문화를 이끈 15명의 명편집자의 이야기를 한국 출판의 1세대 편집자가 간추리고 해석한 책이다.
편집자의 일상에서부터 위대한 편집자의 행보
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훌륭한 위인이라 할 만한 이들의 뛰어난 안목이나 습관
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리더스 다이제스트, 에스콰이어, 뉴요커, 마드모아젤과 같은 유명 잡지가 탄생하기까지 그들의 창업 아이디어
와 시대의 니즈
를 읽는 감각을 배울 수 있으며 1900년대의 미국의 역사
에서 오늘날 배울 만한 요소들도 담겨있어 인상적인 책이다.
먼저 15인의 편집자 소개 중 책 제목에 걸맞는 편집자의 세계
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은 퍼트넘의 편집국장인 윌리엄 타그를 다룬 파트이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권우 독서평론가의 해설을 먼저 읽은 덕분에 이 파트를 먼저 읽을 수 있었다. 윌리엄이 저술한 “발칙한 갖가지 기쁨들(Indecent Pleasures)”에 인용된 편집자의 24시간은 책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만큼 고된 여정이다.
출근하여 우편물을 정리 및 답신하고, 원고 개요를 읽고, 타 평론가의 리뷰를 검토하고, 작가를 만났을 때 할 이야기를 메모하고, 출간을 앞 둔 도서에서 수정할 부분을 찾아내고, 원고 피드백에 대한 일정을 계획하고, 선전용 문안과 약력 등을 구술하고, 저자들과의 저녁 약속 시간을 보내며, 잠들기 전 원고의 가치를 선별한 후 하루를 반성하며 내일 있을 편집 회의를 계획하며 잠든다.
그 외에도 루틴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지저분한 일들 - 저자로부터의 매상 부수 및 광고 등의 항의, 타 출판사와의 교섭 요청, 토론 참석 여부에 대한 요청, 긴급 제안 기획 회의 등 - 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데 오늘날의 힘든 직장 생활이 100년 전에도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느 직업이나 열정없이 쉬운 일은 없는 듯 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주도적으로 즐기는 일만이 노동의 괴로움 속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개인적 차원의 해법임을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의 꿈을 가진 이라면 이 책은 너무 훌륭한 책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편집자의 일상을 엿볼 수도 있고 고정기 저자의 한국 실정으로 이관한 해석도 맛볼 수 있으며 명편집자들이 성공하기까지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맥스웰 퍼킨스는 헤밍웨이와 같은 유명 작가의 재능
을 간파하는 눈을 가졌고 마찬가지로 파스칼 코비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을 발굴했다. 이들의 재능은 단순히 좋은 작가를 알아보고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존 스타인벡의 무명 시절에 그가 앞날을 헤쳐나갈 만한 용기와 신뢰를 주었고, 사후 그로부터 “나의 유일한 편집자, 아버지, 교사, 악마, 합작자, 양심”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며, 퍼킨스의 경우 헤밍웨이와 낚시를 즐기며 다른 출판사로부터 그를 영입하는 하였다. 이처럼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 외에도 작과와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
로써의 삶을 살았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편집자라는 직업 또한 작가와 관련된 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경영인이 되어야 하기에 시대의 흐름, 고객의 니즈를 통찰하는 일도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에스콰이어의 창간자인 아놀드 깅리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창간자인 드윗 엘레스 등의 일대기에선 창업에 관한 인사이트
도 얻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깅리치의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설탕 선물거래로 70만 달러를 벌었던 것이 가격 폭락으로 5만 달러의 수익으로 종결된 것은 오늘날 주식 투자나 비트코인을 연상케 한다.
잠깐 번외로 새자면 이 책의 출판사인 페이퍼 로드 책은 역사를 다루는 도서가 많아 가끔 옛 현인들의 발 자취에서 배울 것이 많아 즐겨 읽는데 이 대목도 그런 부분의 하나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역사 - 그 중에서도 한 개인이 살았던 시대에 집중된 미세한 역사 - 를 즐겨 찾는 편이다. 누구나 학창시절 과학 시간의 열효율을 배운다.
석탄이나 기름을 떼 발생한 열이 에너지 자원이 가진 만큼의 열로 변환되지 않고 어디론가 새어나간다. 지붕으로 창문으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로 빠져나간다. 단열재
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사도 유사하다. 한 개인이 전력투구하여 일생을 바친 지혜가 새어 나간다. 죽음이라는 섭리에 의해 단절된다. 여기에도 단열재가 필요하다. 한 개인의 지혜를 오롯이 담은, 더 상세히 이런 책과 같이 미세한 역사의 지혜를 담은 책이 그러한 단열재라고 생각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깅리치가 최신 스타일을 대리점과 계약한 의상점에 사진 전송하는 기법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그의 접근법이 오늘날 인스타그램의 흥망성쇠와 무엇이 다를까? 역사속에는 늘 해답이 숨어 있는데 왜 이 해답을 찾아보려 하지 않을까?
페어차일드 출판사의 패션 출판에 관한 독점권 타파 방식을 에스콰이어 잡지 지면을 통해 타파하는 방식이나, “Arnold Gingrich Esquire(아놀드 깅리치 귀하)”의 편지에서 잡지 제목을 Esquire로 정한 발상력이나, 잡지의 1/3이 원색판으로 출간되는 배경 등은 굳이 편집자를 지망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배울만한 점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영입함으로써 신생 작가들이 그와 나란히 작품을 실을 수 있다는 니즈를 충족시킨 점, 소설가들이 가난한 시대라는 점을 꿰뚫어 헤밍웨이와의 원고료와 비교하며 스스로의 원고료를 납득하게 한 점, 일류 만화가를 돕던 보조 만화가를 발굴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의 재능과 영혼을 에스콰이어에 쏠리게 한 점, 그로부터 그 유명한 에스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점, 시장 및 구독자를 조사하여 당시 주 5일 근무제의 변화 속에 “여유”라는 트렌드와 독자 니즈를 파악해 관련 기사를 실었던 일련의 과정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람을 중심으로, 니즈를 중심으로, 또 그 결합속에서 파생하는 시너지까지 비즈니스 효율의 끝판왕이자 편집자를 넘어선 경영자의 면모는 오늘날에도 배울 것이 많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드윗 엘레스 또한 일류 잡지에서 읽을 거리를 엄선, 요약하여 언제나 들고 다닐 수 있게 포켓 사이즈로 만들어 미국의 군인들이 세계 각국의 전도사이자 광고자로 무보수로 활약하게한 그의 안목도 만만치 않다.
보그, 하퍼스 비자와 같은 잡지에서 소개된 패션은 너무 비싸 젊은 여성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이런 틈새 시장을 알아챈 마드모아젤의 전략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편집자 마다 나름의 특유의 재능, 안목, 경영 전략도 일품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순수 열정 그 자체 “캐스 캔필드”였다. 그는 출판사의 회장 자리도 스스로 물러나 선임 편집자의 임무를 맡을 정도로 편집자로써의 삶이 행복 그 자체
였던 사람이다.
스탈린이라는 책의 흥행 가능성과 무관하게 과감히 소신을 가지고 실패를 인정하며 출간을 중지하는가 하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수상 조르주 클레망소의 출간을 거절한 일까지 편집자의 인생이 그의 일생 전부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열정의 편집자에게서 정명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직업이나 해당 분야와 물아일체된 모습은 늘 매력을 느끼게 한다.
편집자들의 위대한 일대기 외에도 책에는 읽을 거리가 참 많다.
오늘날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자동화 도구로 업무를 줄이는 노력이 당시 대리인, 비서의 도움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며 형태는 다르지만 1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사람의 생각과 대처법은 비슷하다는 것에 흥미가 끌리기도 했다.
대공황 때 현금의 부족을 방지하고자 루즈벨트가 은행을 강제로 문닫게 해 시중에 돈이 돌지 않던 현상, 은행 자체가 파산하여 사업에 커다란 차질을 빚는 사례 등 당시 미국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들이다.
대공황 같은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니 국가와 은행을 믿지말고 어느 정도의 현금은 수중에 넣어둬야 하는 건 아닐까와 같은 나름의 소소한 전략을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처럼 이 책은 편집자, 작가, 출판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독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나로써는 읽는 내내 책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편안했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대한 편집가들의 개인 가치관, 전략, 통찰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각자의 재능이 어떻게 출판업계라는 그림을 예쁘고 고귀하게 수놓는지 그 행보와 시간의 흐름을 엿보다 보면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차고 넘친다.
미국의 근현대사의 시대적 배경은 자체로도 삶의 지혜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마치 당시 미국의 영화를 감상하듯 추억에 젖게 하는 아늑함과 아련함이 그려진다.